CEO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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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땡중 같은 젊은이들
#사례 1.

“저는 항상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왔으며, 마음먹은 일은 꼭 해내는 기질을 갖고 있습니다.”(A지원자)

“마음먹은 일을 꼭 해낸 사례를 하나만 이야기해 주세요.”(면접관)

“(점점 얼굴이 붉어지면서 묵묵부답)”(A지원자)


#사례 2.

“입사지원서에 삼국지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고 적혀 있는데 어떤 도움이 되던가요?”(면접관)

“삼국지에는 등장인물이 많아 인생에 도움이 되는 수많은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제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B지원자)

“그러니까 어느 부분의 등장인물, 누구의 어떤 행동이 인생에 도움이 되었습니까?”(면접관)

“(머리를 긁적거리며 묵묵부답)”(B지원자)


사장으로 산다는 것이 참 힘들다. 누구는 기업경영의 핵심을 ‘인재 경영’이라고 했다. 회사가 얼마나 성장하는지는 훌륭한 인재를 얼마나 많이 모시고 키우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채용 인터뷰를 하다 보면 속이 다 썩는다. 지난 주말 신입사원 면접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서류전형으로 고르고 또 골라 9명만 면접했다. 괜찮은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러나 실망이었다. 아니 실망보다는 허탈했다고나 할까?

요즘 젊은이들은 위의 A와 B처럼 항상 추상적이고 멋진 단어를 쓰는 데 열중하는 것 같다. 마치 아나운서처럼 멋진 포즈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훌륭한 인재’ ‘꼭 필요한 사람’ ‘엄청나게 끈기 있는 남자’ 등. 이런 형용사와 수식어를 듣고 난 뒤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훌륭한가, 또는 왜 끈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등의 질문을 이어서 던지면 거의 묵묵부답이다. 아니면 한 번 더 형용사를 남발한다. 진짜 진짜 멋진 사람이라고.

회사 일을 잘하려면 ‘현실’에 밝아야 한다. 회사 내에서 어떤 제안을 하고 싶으면 제안 내용은 항상 구체적이어야 하고 사실(fact)에 근거해야 한다. 가장 현실적인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이다. ‘매우 빠르다’는 표현을 쓰는 대신 ‘시속 135㎞’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꽤 괜찮은 편’ 또는 ‘잘될 것’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고 ‘이런 면에서는 장점이지만 저런 면에서는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또는 ‘성장률이 35% 이상 될 것 같다’는 식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나 의사결정자의 마음이 열리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일간지에 CEO들은 괴짜를 좋아한다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경영자 370여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83.9%가 ‘괴짜 기질이 회사의 창의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떤 사장은 아예‘괴짜 지수’라는 것을 평가항목에 넣는단다. ‘돈 많은 여자가 돈 많은 남자를 선호한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 다소 엉뚱한 질문을 하면서 괴짜 지수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창의성 높은 직원을 선발해야 하는 것이 회사의 사명이다. 그래서 어느 재벌그룹 회장은 ‘천재 경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괴짜 지수’라는 것이 너무 형식적인 창의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내용을 충실하게 준비하기보다 우선 튀고 보자는 식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가 인터뷰한 A와 B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무조건 튀는 것과 창의적인 것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것은 기존 사고방식을 뛰어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지, 말장난하듯이 튀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그런데 많은 젊은이가 이를 헷갈리는 것 같다. 그러니 내공을 다지는 독서나 전공공부는 멀리하고 인터뷰 잘하는 법을 배우러 학원에 다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이미 득도한 선승(禪僧)이 술 마시는 모습을 보고 불교 규율을 목숨처럼 지키는 율승(律僧)을 비난하며 선승의 겉모습만 따라 하는 ‘땡중’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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