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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사랑의 리더십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누나가 감기약을 잘못 먹어 부작용으로 매우 고생한 적이 있다. 회사에 다니던 누나는 출근도 못하고 하루 종일 끙끙 앓으며 누워 있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께 연락을 했다. 어머니께서 놀라 우리가 머물던 대구 자취방으로 달려오셨다. 오시자마자 누나를 데리고 병원을 갔다. 감기약을 너무 강하게 처방해 발생한 감기약 부작용이라고 의사선생님은 말했다. 어머니와 나는 약국으로 가서 이 같은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약사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어머니께 약값만 되돌려 줬다.

어린 나이였지만 너무하다 싶어 나는 약사를 가만 두면 안된다고 펄펄 뛴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다혈질인 나는 경찰서에 고소라도 하자고 했다.

그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저 사람이 일부러 그랬겠나. 네 형도 조금 있으면 저런 일을 할 텐데 남한테 너무 심하게 하면 나중에 다 되돌려 받는다”고 말이다.

어머니 머릿속에는 벌써 한의대 1학년에 다니는 형의 미래를 걱정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당시 뭐라고 반박을 한 것으로 기억하지만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내 팔을 잡고 그냥 집으로 돌아오셨다. 우리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결혼한 첫해로 기억한다. 시골에서 어렵게 살면서도 오직 아들 두 명 잘 키운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살아오신 어머니다. 그런 어머니께 두 아들은 ‘불효막심하게’ 모두 연애결혼을 했다. 그 흔한 부잣집 사위도 되지 못했다. 호화예단은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항상 “나는 공부 많이 한 며느리가 너무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신다. 공부 많이 해봐야 음식도 제대로 못하고 제사상 하나 준비 못하는 빵점짜리 며느리인데도 말이다. 또 며느리를 만날 때마다 “가능하면 집에 일하는 사람 두고 살아라. 젊었을 때 몸을 아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된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두 며느리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감격한다. 그래서 내가 어머니께 한번 물어봤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냐고. 어머니의 답변은 이랬다. “서울 사는 며느리가 파출부를 써야 되는데 내가 하지 말라고 안 하겠느냐. 자기 형편에 맞게 사는 거지. 내가 눈치를 주면 그냥 숨기는 거지. 그래서 그냥 그렇게 하는 거야. 편하게 해주려고. 물론 몸을 아끼라는 말은 진심”이라고 말했다. 나는 또 한번 그 현명함에 두 손 모두 들고 말았다.

얼마 전 어머니께서는 무릎 관절 수술을 받으셨다. 자식 키우며 다리를 너무 많이 쓰셨는지 무릎 관절이 맷돌처럼 변해 있었다. 연골은 어디 갔는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아들들이 인공관절 수술을 해드렸다. 덕택에 나는 평생처음 어머니를 두세 달 직접 모실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처음에는 어머니께서 집에 계시니까 좀 일찍 들어가려고 노력도 했으나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매일 늦게 들어가고 아침 6시가 되면 출근하는 모습만 보여 드리고 말았다.

최근 어느 날 회사 일이 잘 안 풀려 술을 먹고 늦게 들어갔더니 어머니께서 수술 통증에 밤잠을 못 이루시고 계셨다. 나는 술 먹은 김에 손자 침대에 누워계시는 어머니 다리를 안고 한참 울었다. 왜 울었는지 나도 모른다. 그냥 울고 싶었다. 그래서 하염없이 울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전화할 때마다 버릇처럼 이야기하신다. 너무 돈에 집착하지 말라고. 또 힘든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곧 생길 징조니 힘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위기는 기회이니 위기에 감사하고, 기회는 위기의 시작이니 기회에 겸손해야 한다는 어느 목사님 설교의 다른 표현이리라.

초등학교밖에 나오시지 않으셨지만 대그룹 회장님보다 나은 자녀 사랑법을 지니신 어머니가 있어 나는 오늘도 힘차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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